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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읽기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있나

by 재테크의 정석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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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77196?sid=110

 

조지오웰의 1984에는 '2분 증오'라는 신기한 장면이 나온다.

스크린에 반체제분자의 모습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2분 동안 온갖 증오와 분노를 퍼붓는 시간을 가진다.
2분 증오에 참가할 의무는 없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가하여 온갖 욕을 퍼붓는다.
소설의 재미를 위해 과장이 가미된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냉철한 통찰력으로 그려낸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증오와 혐오로 가득 차있고,
분노를 마음껏 발산할 기회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연예인, 정치인, 운동선수, 공직자 누가 되었든 상관없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주섬주섬 전기톱을 꺼낸다.
'싫어해도 괜찮은 것'이라고 낙인이 찍히고
'중립기어를 풀어도 된다'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
법, 공정, 정의, 도덕, 윤리라는 연료를 들이붓고 전기톱의 시동을 건다.
전기톱날은 굉음을 내며 회전을 시작한다.
저항할 수 없는 상대방의 인권, 명예, 자존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부적절한 행동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혀지면, 
전기톱날은 그 사건과 연관된 검찰, 경찰, 기자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한번 꺼내져 시동이 걸린 전기톱은 누군가를 찢어발겨야만 멈출 수 있다.

나와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고, 위법한 행동을 했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행동을 했으니 전기톱의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아니,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며 전기톱으로 무참히 찢어발겨도,
내 행동이 비난받을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정말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
사실은 그저 마음껏 분노를 발산할 분출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분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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